서울임상심리연구소
   
  [초록칠판] “여기 있는 장난감은 모두 불량품이야!”
  글쓴이 : 황성훈     날짜 : 06-11-14 11:09     조회 : 9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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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치료가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속상한 것이 많다 보면, ‘속상해요 선생님’하고 말하는 대신에
치료자의 속을 긁어서 자신의 속상함을 맛보게 하는 식으로 마음을 전달합니다.

“여기 있는 장난감은 다 고장났어!”
“모두 불량품이야”
"가지고 놀게 하나도 없어!"
“선생님을 죽일래요. 그 다음에 연구소를 내가 차지해서 팔아버릴 거예요”
“이 장난감은 내가 가져 가겠어요”

그 아이는
놀이의 장으로 잘 들어오지 않으면서
이런 말로 치료자의 속을 긁어 놓았습니다.

치료자는 참기도 했지만,
크게 작게 아이와 부대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뭔가가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장난감에 대한 불평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일전에 건설 장비 세트를 준비했는데, 그것을 좋아합니다.

팔이 긴 크레인으로 놀이를 했는데,
그 크레인이 긴 팔을 마구 휘둘러서 주변의 장난감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면서 “나, 화났어!”하고 크레인이 말하는 것입니다.

치료자는 매우 반가웠습니다.
치료자를 긁어 자신의 속상함을 전하던 아이가
이제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셈이니까요.

연구소를 들어오려면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놓고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신발을 저의 큰 신발 옆에 놓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를 한참 속상하게 만들던 그 시절부터 말입니다.

저의 큰 신발 곁에 바짝 붙어서 놓인 그 아이의 작은 신발....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그 아이도 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남들은 잘 몰라주는 자신의 마음을
황 선생은 읽어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걸면서
제곁에 신발을 바짝 붙여 나란히 놓고, 놀이시간에는 그렇게 부대껴왔던 것입니다. 

"미안하다! 네 마음을 좀더 빨리 헤아리지 못해서..."